Installation view of 《Nothing》 © Pipe Gallery

파이프갤러리는 양문모 작가의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것》을 5월 12일까지 개최한다.

양문모는 형상의 재현을 넘어 회화의 과정성과 비언어적 사유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그리기’와 ‘지우기’, ‘구축’과 ‘해체’의 반복을 통해 이미지의 완결성을 지연시키고,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전시 제목 ‘아무것도 아닌 것’은 지난 개인전 평론에서 인용된 문구로, 작가의 회화적 태도를 함축하며 그 방향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서 차용되었다. 양문모는 회화에서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어떻게 그리는가에 주목하며, 완성, 재현, 의미 전달과 같은 통념적 목적을 지속적으로 유예해왔다.


Installation view of 《Nothing》 © Pipe Gallery

이러한 맥락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회화에 부여되어 온 고정된 의미와 형상, 그리고 완결성으로부터 벗어난 잠정적 상태를 가리킨다. 즉, 그의 회화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이 중첩된 채 끊임없이 갱신되는 과정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양문모는 2021년부터 2026년에 걸쳐 제작된 42점의 드로잉 연작 ‘거기 있는 것’(2021~2026)을 새롭게 선보인다. 이 연작 시리즈는 반복과 시간의 중첩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2021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매년 다시 수정되고 덧그려지며,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되기보다 서로 다른 시점의 감각이 공존하는 상태로 남는다. 작가는 동일한 화면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과정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교차시키며, 변화된 감각과 판단을 멈추는 순간들을 기록한다.


Installation view of 《Nothing》 © Pipe Gallery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단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되돌아가고 겹쳐지며 때로는 중단되고 지워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복합적인 시간을 제안한다.

지워졌지만 남아 있는 것, 사라졌지만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그의 탐구는 회화를 존재의 재현이 아닌 사라짐과 흔적을 가시화하는 장으로 전환시키며, 화면을 하나의 결론이 아닌 특정 시점에서 잠시 멈춘 상태로 제시한다.

이때 화면은 완결된 결과가 아니라 유예된 상태로 남아, 관객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중첩된 시간과 감각의 미묘한 차이를 경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