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egue Yang, 〈Tidal Field (조석장潮汐場)〉, 2026. 《Haegue Yang: Through》, installation view, Dia Beacon, New York, 2026–28. © Haegue Yang. Photo: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디아 비컨의 두 층을 연결하는 대규모 커미션
양혜규의 개인전 《Haegue Yang: Through》가 미국 뉴욕주
디아 비컨에서 2026년 10월 10일 개막했다. 2028년 6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미국에서 선보이는 최대 규모의 커미션이다. 디아 비컨에서 한 작가가 지상과 지하 두 층에 걸쳐 여러 전시실을 연결하는 신작을 구상한 첫 사례로, 조던 카터와 전민선이 공동 기획했다.
전시는 건물의 서로 다른 공간적 조건에서 출발한다. 자연광과 인공조명, 지상과 지하, 공중에 매달린 구조와 바닥에 놓인 형태가 서로 관계를
맺는다. 양혜규는 이러한 차이를 동아시아 오행사상의 방위와 색채, 윤이상의
음악으로 연결하며 두 층에 걸친 전시를 구성한다.
LA MOCA에서 이어진 윤이상 연구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은 양혜규가 오랫동안 이어온 작곡가 윤이상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연구다. 작가는 10년 넘게 아카이브 조사와 예술적 탐구를 통해 윤이상의
유산을 다뤄왔다.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하고 정치적 박해와 망명을 경험한 윤이상의 삶, 그리고 동서양의 음악적 전통을 연결한 그의 작업은 양혜규가 역사와 문화적 이동을 추상으로 탐구하는 매개가 되어왔다.
이러한 관심은 올해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에서 열린 《Haegue Yang: Star-Crossed Rendezvous》(2월 24일–8월 2일)에서도 드러났다. 솔 르윗의 입방체 구조에서 출발한 블라인드 설치와
윤이상에게 헌정한 〈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2024)이 함께 소개됐다. 후자는 윤이상의 〈오보에와 하프, 소관현악을 위한 이중협주곡〉(1977)에 맞춰 움직이는 조명이 색채
블라인드 구조를 비추는 작품이다. 3월 10일에는 MOCA와 LA 필의 협업으로 설치 감상과 같은 곡의 실연을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양혜규: Star-Crossed Rendezvous》 전시 전경, MOCA 그랜드 애비뉴. / 제공: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사진: Zak Kelley.
〈Images〉
에서 출발한 사신도와 방위의 체계
디아 비컨의 《Through》는 이러한 연구를 다른 음악과 새로운
공간 구성으로 전개한다. 이번에 중심이 되는 곡은 윤이상이 수감 중 작곡한 사중주곡 〈Images〉(1968)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를 현대 음악으로 재구성한 이 곡은 고대의 상징과 동아시아 사상을 서양 악기의 음색과 연결한다.

강서대묘의 사신도(四神圖). 위쪽 우측부터 청룡(동), 백호(서)가 아래쪽 우측부터 주작(남)과 현무(북)의 모습이다.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Images〉에서 북쪽의 현무는 플루트, 동쪽의 청룡은 오보에, 남쪽의 주작은 바이올린, 서쪽의 백호는 첼로에 대응한다. 각 악기의 음색은 고유한 성격을
유지하면서 서로 겹치고 이어진다. 양혜규는 이러한 관계를 조형과 색채,
움직임으로 다시 구성한다. 오행사상의 방위와 색채 체계를 건물의 방향에 연결하면서, 음악 안에서 공존하던 관계를 관객이 이동하며 경험하는 공간으로 전개한다.
윤이상이 고대의 이미지를 현대의 음악 언어로 옮겼다면, 양혜규는 그
음악을 다시 재료와 빛, 움직임의 관계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윤이상의 작업은 시대와 지역, 매체를 가로지르는 전시의 구성 원리로 작용한다.
네 작품으로 펼쳐지는 빛과 재료, 움직임
전시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네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지상층의
〈Tidal Field〉(2026)는 어두운 베네치안 블라인드를
곡선으로 늘어뜨린 설치다. 반복되는 수평 날개로 이루어진 산업 제품은 휘어지고 처지면서 유연한 흐름을
만든다. 자연광은 블라인드의 표면을 통과하며 주변 공간을 드러내거나 가리고, 구조의 규칙성과 재료의 유동성을 함께 보여준다.
〈Fallen Field〉(2026)의
길게 뻗은 형태는 뱀과 용 사이에 머무는 한국 설화 속 이무기를 연상시킨다. 바닥으로 펼쳐지고 기둥을
따라 부분적으로 올라가는 형상은 상승과 하강 사이에 멈춘 상태를 드러낸다. 이번 작품은 양혜규가 지금까지
선보인 이무기 설치 중 가장 큰 규모다.

양혜규, 〈낙하장(Fallen Field )〉 전시전경 /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인근의 〈Sonic Field〉(2026)는
전구 위에 방울을 넓게 펼친 작품이다. 촘촘하게 놓인 재료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면서 조형의 밀도와
틈을 함께 드러낸다. 방울이 지닌 소리의 가능성과 전구의 빛이 겹쳐지며, 시각과 청각을 함께 환기하는 감각적 환경을 만든다.

양혜규 〈소리장(Sonic Field )〉 전시전경 /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지하층의 〈Axial Flow〉(2026)는
수직 금속 루버와 움직이는 조명으로 구성된다. 기둥의 배열에 맞춰 놓인 루버는 프로그램에 따라 회전하며
공간을 열고 닫는다. 약 40분 동안 반복되는 움직임은 악보처럼
조직되어, 개별 요소들이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하나의 흐름으로 모인다. 조명 역시 오행사상의 방위별 색채와 연결되어 루버의 움직임과 관계를 맺는다.
지상층의 작품들이 암시하는 움직임과 변화가 지하층에서는 실제 운동으로 전개된다.

양혜규 〈축류(Axial Flow)〉 /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설치와 연주를 연결하는 개막 프로그램
디아는 전시 개막에 맞춰 윤이상의 음악을 전시 공간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공식 개막 프로그램에는 10월
10일 지하 전시실에서 진행하는 상주 앙상블 세종솔로이스츠의 〈Images〉 연주와, 이에 앞선 음악학자 Mina Lee의 해설 강연이 포함됐다. 강연은 윤이상의 생애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작품을 살펴보고, 윤이상과
양혜규의 작업 사이의 관계를 짚도록 기획됐다.
LA MOCA에서 설치 감상과 콘서트홀의 연주를 연결했다면, 디아 비컨에서는 작품의 바탕이 된 음악을 설치가 놓인 전시 공간에서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조형으로 전개된 음악적 관계와 악기의 실제 음색을 함께 경험하도록 한 기획이다.
미니멀리즘의 공간에서 만나는 음악과 문화적 기억
이러한 구성은 미니멀리즘의 반복과 모듈,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유동적인
형태에 음악과 신화, 문화적 기억을 접속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MOCA에서 솔 르윗의 조형 언어와 윤이상의 음악을 나란히 놓았다면, 디아 비컨에서는 그
관계가 두 층의 전시 공간에서 방위와 빛, 관객의 이동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추상은 여기서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을 연결하는 언어가 된다.
로니 혼, 이우환, 스가
기시오 등의 전시가 인접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양혜규의 프로젝트는 지상과 지하의 여러 전시실을
연결한다. 이러한 배치는 《Through》를 디아 비컨이
축적해온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게 한다.
《Through》에서 윤이상의 음악은 방위와 색채, 재료와 움직임을 연결하는 구성의 바탕이 된다. 관객은 서로 다른
작품과 두 층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그 관계를 순차적으로 경험한다. LA MOCA에서 음악과 설치, 공연을 연결했던 양혜규의 연구는 이번 전시에서 음악적 관계를 공간적 관계로 전개하며 이어진다.

양혜규 작가/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양혜규 작가 소개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설치와 조각, 콜라주,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화적·철학적·역사적 문제를 탐구한다. 블라인드와 방울 같은 산업 제품을 수공예적 제작 방식과 결합하고, 빛과
소리, 움직임을 활용해 재료의 감각적 가능성을 확장한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와 2012년
카셀 도큐멘타 등에 참여했으며,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8년 독일 루트비히 미술관의 볼프강 한 미술상과 2022년
싱가포르비엔날레의 베네세상을 수상했다.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디아 비컨과 허드슨강을 내려다본 전경. / 사진: 마이클 고번(Michael Govan)
디아 비컨 소개
디아 비컨(Dia Beacon)은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미국 뉴욕주
비컨의 허드슨강 인근에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이다. 나비스코의 포장 상자 인쇄공장을 개조해 2003년 5월 개관했으며,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소장품과 특별전, 신규 커미션을 선보인다.
높은 천장과 넓은 기둥 간격, 풍부한 자연광을 갖춘 산업 건축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공간 개조에는 작가 로버트 어윈과
건축사무소 오픈오피스가 참여했다. 한 작가의 작업을 장기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디아의 운영 철학에 따라
작품과 공간, 관객의 경험이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전시정보
전시명: 《Haegue Yang: Through》
기간: 2026년 10월 10일–2028년 6월 12일
장소: 디아 비컨(Dia Beacon), 미국 뉴욕주 비컨
주소: 3 Beekman Street, Beacon, New York 12508
공동 기획: 조던 카터(Jordan Carter), 전민선(Min Sun Jeon)
공식 웹사이트: diaart.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