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이승택: 조각의 바깥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이승택의 작업 세계를 대규모로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는 2026년 4월 10일부터 7월 26일까지 소마미술관 1관 1–5전시실과 올림픽조각공원에서 진행되며,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온 작가의 조각, 설치, 포토픽처, 드로잉, 오브제, 아카이브 자료 등 200여 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살아 있는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소마미술관 1관과 올림픽조각공원을 함께 아우르는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이승택《조각의 바깥에서》전시 전경 / 사진: 갤러리 현대

전시의 미술사적 의의
 
이 전시는 단순히 한국 원로 작가의 작업을 정리하는 회고전으로만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승택의 작업을 통해 조각이 20세기 후반 이후 어떻게 물질, 형태, 장소, 행위, 자연, 시간의 문제로 확장되었는지를 다시 묻게 하는 전시다.
 
이승택이 오랫동안 제안해 온 “비조각(Non-Sculpture)”은 조각의 부정이 아니라, 조각을 고정된 물체의 생산에서 사건과 관계, 과정과 현상으로 이동시키는 급진적 사유에 가깝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승택의 위치는 특수하다. 1960–70년대 한국 미술계는 서구에서 유입된 모더니즘의 언어, 추상미술의 형식, 그리고 이후 단색화로 이어지는 회화 중심의 담론을 형성해가던 시기였다. 회화의 평면성, 물질성, 정신성, 반복과 수행성은 한국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주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승택은 그 흐름 안에서 회화적 추상이나 모더니즘적 형식 실험으로 자신을 위치시키지 않았다. 그는 조각의 전통적 문법을 해체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의 생활세계와 자연, 민속적 감각, 행위와 장소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소마미술관에 전시된 이승택의 '묶기' 연작. / 사진: 갤러리 현대

이 점에서 이승택의 작업은 한국 미술 내부의 주변적 실험이 아니라, 글로벌 현대미술사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 할 중요한 실천이다.
 
서구 미술사에서 1960년대 이후 조각은 미니멀리즘, 포스트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대지미술, 퍼포먼스, 아르테 포베라 등을 거치며 물체 중심의 조각에서 장소와 과정, 물질과 행위의 관계로 확장되었다. 이승택의 작업은 이러한 국제적 전환과 같은 시대에, 그러나 한국적 조건과 감각 위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된 확장된 조각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비조각, 물질을 사건으로 바꾸다
 
이승택은 조각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의 예술은 일찍부터 조각이라는 장르의 내부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설치,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 오브제, 드로잉을 넘나들며 사물과 자연, 장소와 몸, 시간과 행위 사이에서 예술이 발생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그의 작업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흐름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최근에는 국제 미술계에서도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핵심 사례로 다시 읽히고 있다.


이승택《조각의 바깥에서》전시 전경 / 사진: 갤러리 현대

그의 핵심 개념인 “비조각”은 단순히 조각이 아닌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승택에게 비조각은 조각의 외부에서 조각을 다시 사유하는 방법이다. 조각이 반드시 돌, 나무, 금속처럼 고정된 물질로 존재해야 하는가. 형태가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사라지는 것, 움직이는 것도 조각이 될 수 있는가. 이승택은 이 질문을 이론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 작업을 통해 밀어붙였다.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묶기’ 연작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돌, 항아리, 일상 사물, 신체 형상 등을 밧줄이나 노끈으로 묶는 행위는 단순한 조형적 조작이 아니다. 묶인 대상은 원래의 물질성을 유지하면서도 압력의 흔적과 표면의 변형을 통해 다른 감각을 만들어낸다. 단단한 돌은 부드러운 살처럼 보이고, 일상의 사물은 압박과 긴장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읽힌다. 이때 조각은 물체 자체가 아니라 물질과 힘, 표면과 압력, 형태와 흔적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가 된다.
 
‘비물질’ 작업은 이승택의 작업을 글로벌 조각 담론 안에서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그는 바람, 연기, 불처럼 형태를 갖지 않는 자연 현상을 시각화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천은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드러내고, 불은 물질을 태우며 소멸과 변화의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만든다. 이 작업들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조각은 더 이상 정지된 대상이 아니라, 자연과 물질, 행위와 시간이 만나는 사건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이승택의 작업은 서구의 대지미술이나 포스트미니멀리즘, 개념미술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단순히 서구 미술사와 병렬하거나 그 영향 아래 놓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이승택은 한국의 생활문화와 자연환경에서 발견한 재료와 감각을 현대미술의 실험 언어로 전환했다. 기와, 돌, 밧줄, 연, 바람, 불은 그의 작업에서 민속적 소재나 전통의 장식이 아니라, 조각의 존재 조건을 바꾸는 장치가 된다. 그는 한국적 요소를 재현하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 조각의 개념을 재구성했다.
 
따라서 이승택의 급진성은 두 방향에서 발생한다. 하나는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 언어를 따라가는 대신, 조각을 물질과 형상의 장르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생활세계와 자연, 민속적 감각을 단순한 전통 이미지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구조적 언어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을 단색화 중심의 회화적 추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지점이다.
 
 
 
글로벌 미술사 속에서 다시 읽는 이승택
 
이번 전시에서 올림픽조각공원과 소마미술관 실내 공간이 함께 사용되는 점도 이러한 작업 세계와 잘 맞아떨어진다. 공원에 설치된〈기와를 입은 대지〉와〈열주탈〉은 실내의 드로잉, 조형물, 아카이브 자료와 연결되며 다시 읽힌다. 야외 조각은 단순히 공원 안에 놓인 오브제가 아니라, 장소와 대지, 시간과 관람자의 이동 속에서 경험되는 작업이 된다. 실내 전시는 그 작품의 형성 과정과 개념, 자료와 맥락을 함께 보여주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이승택 작업의 구조를 드러낸다.


서울 올림픽공원에 설치된 이승택 작〈기와를 입은 대지〉(위)와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이 작품의 드로잉 및 조형물. / 사진: 갤러리 현대

드로잉과 기록 자료를 완성작과 동등한 비중으로 배치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승택의 작업에서 스케치, 기록, 사진, 행위의 흔적은 완성작을 설명하는 보조 자료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작품이 어떻게 사고되고, 어떤 장소에서 발생하며, 어떤 방식으로 시간 속에 남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층위다. 이승택에게 작품은 물질적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고와 행위, 기록과 기억의 총체로 존재한다.
 
이승택이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다시 주목받는 흐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이승택: 거꾸로, 비미술》은 그의 60여 년 작업을 새롭게 조명한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과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기획한《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에 참여하며, 그는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국제 미술계에 다시 소개되었다. 이 전시는 한국 실험미술이 한국 현대미술 내부에서 이룬 혁신뿐 아니라 세계 미술의 실천 범위를 확장한 흐름으로 다시 조명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테이트 모던, 국립현대미술관, M+, 구겐하임 아부다비, 시드니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는 이승택의 작업이 한국 현대미술사의 특수한 사례를 넘어, 글로벌 미술사 안에서 확장된 조각과 실험미술의 중요한 실천으로 재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글로벌 미술계는 다시 물질과 비물질, 생태와 장소, 신체와 행위, 기록과 아카이브의 관계를 묻고 있다. 기후위기 이후의 생태적 상상력, 포스트미디엄 이후의 장르 해체, 퍼포먼스와 아카이브의 관계, 비서구 현대미술의 재서술은 모두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쟁점이다. 이승택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성을 갖는다.
그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물질 중심의 조각을 넘어 자연 현상, 일시성, 장소성, 행위성, 비물질적 경험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승택 전시의 가치와 의미
 
그런 의미에서《이승택: 조각의 바깥에서》는 과거를 회고하는 전시라기보다, 글로벌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한국 실험미술의 위치를 다시 묻는 전시다. 이승택의 ‘비조각’은 조각 이후의 조각을 사유하게 한다. 그것은 오브제를 해체한 이후에도 예술이 어떻게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는지, 사라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미술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지역적 감각이 어떻게 보편적 미학의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승택의 작업이 갖는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한국 미술이 서구 모더니즘과 회화 중심의 추상 담론을 따라가던 시기에, 전혀 다른 방향에서 조각의 급진적 가능성을 실천했다. 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이 단색화와 민중미술, 회화 중심의 서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한국 실험미술이 글로벌 미술사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재위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승택: 조각의 바깥에서》는 조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예술이 세계를 어떻게 감각하고 관계 맺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승택의 “비조각”은 조각의 바깥으로 나간 실천이지만, 역설적으로 조각의 본질을 가장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그 질문이 지금도 유효할 뿐 아니라, 글로벌 미술의 관점에서 앞으로 더 깊이 논의되어야 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승택 작가 / 사진: 갤러리 현대

이승택
 
이승택은 193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난 한국 실험미술과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표 작가이다.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그는 조각을 기반으로 설치,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다. 1960년대부터 “비조각(Non-Sculpture)” 개념을 통해 조각의 형식과 재료, 장소에 대한 질문을 지속해 왔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가장 선구적인 실험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마미술관
 
소마미술관은 서울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현대미술 전문 미술관이다. 올림픽조각공원과 연계하여 현대조각과 공공미술, 동시대 예술을 중심으로 전시와 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실내 전시장과 야외 조각공원이 결합된 공간 구조를 통해 조각의 확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시 정보
 
《이승택: 조각의 바깥에서》
소마미술관 1관 1–5전시실 및 올림픽조각공원
2026.04.10 – 07.26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웹사이트: www.soma.ksp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