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념미술을 다시 읽는 전시
 
국립현대미술관(MMCA)은《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를 2026년 10월 1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현대미술에서 ‘개념미술’이라는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되었는지를 조망한다.


전시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는 김범, 김순기, 박이소, 안규철, 이건용 등 총 28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회화,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140여 점과 아카이브가 함께 소개된다. 또한 작가와의 대화, 국제 심포지엄 등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개념미술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전시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한국 미술이 시각 중심의 표현에서 벗어나 언어, 행위, 사고, 측정, 기호, 제도와 관계 맺으며 ‘생각하는 미술’로 전환되어 온 과정을 다룬다. 여기서 개념미술은 단순히 결과물보다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미술을 뜻하지 않는다. 한국의 개념적 실천은 언어와 논리뿐 아니라 물질, 신체, 행위, 사회적 조건과 긴밀하게 결합하며 전개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복합적인 흐름을 하나의 고정된 정의로 묶기보다, 한국 현대미술 안에서 개념과 과정, 맥락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둔다.
 
 
 
단색화 이후 확장되는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이번 전시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현대미술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흐름 속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 현대미술은 주로 단색화(Dansaekhwa)를 중심으로 소개되어 왔다. 단색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한국 미술의 다양한 실험과 개념적 실천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 설치 전경. © 해머미술관. 사진: 조슈아 화이트

이러한 흐름은 2020년대 들어 변화하고 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는 이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과 LA 해머 미술관의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로 이어지며 한국 실험미술을 국제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재조명했다. 이 전시는 퍼포먼스, 해프닝, 오브제, 사진, 필름, 설치 등 1960~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계보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구겐하임과 해머미술관의 전시가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적 의미를 국제적으로 환기했다면,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개념적 사고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개념미술이 (아니)다’라는 질문
 
전시 제목에 포함된 ‘(아니)’라는 표현은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라는 제목은 무엇이 개념미술인지 단정하기보다, 개념미술이라는 명칭 자체의 경계와 조건을 질문한다.
 
서구 개념미술은 일반적으로 작품의 물질적 형식보다 아이디어와 언어, 제도 비판을 중시한 흐름으로 설명된다. 반면 한국의 개념적 실천은 사회 현실, 정치적 환경, 장소성, 신체성, 일상적 경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한국 개념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 미술사의 용어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한국 현대미술 내부의 조건과 맥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 개념미술을 하나의 닫힌 장르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에서 개념적 사고가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고 변형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이때 개념미술은 특정한 양식이나 형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방식, 작품이 관객과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미술이 현실과 제도, 언어와 사회를 사유하는 방식을 포함한다.
 
 
 
언어, 논리, 행위: 작품은 어떻게 사건이 되는가
 
전시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언어·논리·행위’는 개념미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행위와 언어의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들은 회화나 조각 같은 완성된 결과물 대신 반복적인 행동, 규칙, 신체의 움직임, 시간의 축적을 통해 ‘과정’을 작품으로 제시한다.
이건용과 성능경 등의 작업은 일상의 움직임을 논리적으로 구성해 하나의 사건으로 전환시킨다. 관람객은 이들 작업 앞에서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는 방식과 조건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코디최,〈스캠프스, 스크램을 위한 모델 링〉, 1994 (2026 프린트), 종이에 프린트, 123 × 90 cm. 작가 소장. 작가 제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코디 최의〈스캠프스, 스크램을 위한 모델 링〉역시 신체와 행위, 축적의 문제를 다룬다. 작가는 머리, 손바닥, 복부, 성기, 발가락 등 신체의 각 부위를 나무 상자 속에 일정 시간 삽입하고 머무르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했다. 이는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신체의 에너지를 상자 안에 축적하려는 시도로, 작품을 물질적 결과보다 행위와 과정의 기록으로 이해하게 한다.
 
 
 
사물과 언어: 의미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두 번째 섹션 ‘사물과 언어’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언어의 역할을 의심한다. 사물과 그것을 설명하는 말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언어는 세계를 설명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한다. 전시는 이 간극을 드러내는 작업들을 통해 관람자가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안규철,〈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1991, 나무, 철, 화분, 문, 가변크기. 작가 소장. 작가 제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안규철의 작업은 일상 사물에 사변적인 언어를 더하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1991년에 제작된〈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은 ‘예술’과 ‘삶’이 적힌 두 개의 문, 그리고 의자가 심어진 화분으로 구성된 설치작품이다. ‘예술’의 문에 달린 다섯 개의 손잡이는 문을 통과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질문들을 암시한다. 반면 ‘삶’의 문에는 손잡이가 없어 쉽게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사물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문, 손잡이, 화분, 의자는 예술과 삶의 관계를 질문하는 장치가 된다. 관람자는 작품을 통해 예술로 들어가는 일, 혹은 삶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지도와 측정: 객관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 번째 섹션 ‘지도와 측정’은 세계를 설명하는 기준 체계를 해체한다. 지도, 좌표, 시간, 측정 단위는 객관적인 기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이자 인식의 장치다. 작가들은 이를 변형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우리가 믿어온 정확성과 객관성을 흔든다.


성능경,〈세계전도(世界顚倒)〉, 1974, 오브제, 세계지도, 166.5 × 212 cm, 136 × 196.5 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작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성능경의〈세계전도〉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세계지도를 절단하고 재배열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하는 기존의 기준을 전복한다. 여기서 지도는 단순한 공간 정보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권력, 중심과 주변의 문제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섹션은 한국 개념미술이 추상적 아이디어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측정과 분류, 지도와 좌표 같은 체계를 다루면서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인식되는지를 질문했다. 이는 미술이 시각적 형식을 넘어 인식의 구조 자체를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호의 조정자들: 이미지는 어떻게 재편집되는가
 
마지막 섹션 ‘기호의 조정자들’에서는 신문, 광고, 통계, 사진, 기록 등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와 정보를 재편집하는 작업들이 소개된다. 작가들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대신 기존의 기호를 재배열함으로써 정보가 어떻게 구성되고 의미화되는지를 드러낸다.


김용익,〈무제 (1981년《제1회 청년작가 전》)〉, 1981 (2010 재제작), 포장 상자에 사진, 잉크, PE폼, 가변크기. 사진: 안천호. 작가 소장.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용익의〈무제(1981년《제1회 청년작가전》)〉는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제1회 청년작가전》출품작을 2010년에 재제작한 작업이다. 박스 표면에는 1981년 당시 전시 전경 기록사진이 부착되어 있다. 이는 과거의 작업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전 작업을 다시 편집하고 재맥락화하는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삼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업은 기록과 원본, 재제작과 해석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작품은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다시 읽히고 다시 구성되는 열린 구조가 된다.
 
 
 
개념미술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오늘날 동시대미술은 AI, 데이터, 알고리즘, 네트워크, 참여형 예술 등 비물질적이고 개념적인 조건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개념미술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과거의 미술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동시대미술이 어떤 역사적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한국 개념미술의 역사를 정리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다시 읽기 위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이 무엇을 보여주었는가를 넘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기록되고, 다시 해석될 수 있는가를 물으며 오늘날 한국 동시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사유의 기반임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전경 / 사진 : MMCA

국립현대미술관 소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을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국립미술관이다. 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 등 네 개의 관을 운영하며, 한국 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조명하는 기획전과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소개하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한 국제 교류와 학술 연구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적 확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 정보

전시명: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This is (Not) Conceptual Art)
기간: 2026년 6월 19일 – 10월 11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6·7전시실 및 미술관마당
참여작가: 김범, 김순기, 박이소, 안규철, 이건용 등 28명
출품작: 회화,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140여 점
관람료: 2,000원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