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봄의 디자인》 전시장면 / 사진: 문화역서울284
《돌봄의 디자인》은 2026년 11월 1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전시로, 일상 공간을 유지하는 노동과 관계를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공공디자인의 영역을 새로운 공간과 시설을 조성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돌보는 일로 확장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았던 정다영(CAC)이 총괄 기획했다.
국내외 작가와 디자이너 20명(팀)이 참여해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모형 등 3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쓸기, 닦기, 지우기’, ‘건축을
가꾸다’, ‘도시를 돌보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네 부분을 통해 일상의 행위에서 건축과 도시, 이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범위를 확장한다.
이 전시에서 돌봄은 인간 사이의 배려나 복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건축물과
사물, 경관과 생활환경을 살피고 그 쓰임을 이어가는 공간적 실천이기도 하다. 공공장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선언만으로 공공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곳에 안전하게 접근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 전시는
이러한 조건을 만드는 일을 디자인의 중요한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 관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참여자가 핀란드 건축사무소 보칼(Vokal)이다. 엘라 카이라와 마티 얜켈래가 공동 설립한 보칼은 기존 건축물의 조사와 재사용,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간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영상·음향 설치 〈파빌리온–돌봄의 건축〉은 이들이 기획한 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핀란드관 전시에서 출발한다.

핀란드관(Finnish Pavilion),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61st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옌나 수텔라(Jenna Sutela), 〈에올리안 모음곡(Aeolian Suite)〉, 2026. / 사진: 프레임 핀란드 현대미술(FRAME Contemporary Art Finland).
작업의 대상은 알바 알토와 그의 사무소가 설계해 1956년 건립한
핀란드관이다. 보칼은 이 건물이 세 차례의 주요 복원과 수십 년에 걸친 유지관리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영상과 소리는 건물에 축적된 기억을 전하며, 설계자뿐
아니라 건설 노동자와 관리인, 청소 노동자와 복원 건축가를 건축의 지속에 참여하는 공동의 창작자로 바라본다.
안드레스 하케의 작업 역시 건축의 정돈된 표면 뒤에 있는 관리 체계에 주목한다.
그가 이끄는 오피스 포 폴리티컬 이노베이션의 〈PHANTOM. Mies as Rendered
Society〉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조사한 프로젝트다.
재건된 파빌리온의 지하에는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설비와 교체된 자재, 관리에
필요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케는 그중 일부를 지상의 공간으로 옮겨, 건축의 이미지에서 배제되어 온 물질과 활동을 드러냈다.

〈PHANTOM. Mies as Rendered Society〉 by Andrés Jaque / Photo: Dezeen
하케의 프로젝트를 이 전시의 맥락에서 읽으면, 건축을 감상하는 시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잘 정돈된 공간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와 설비, 노동의 장소까지 포함할 때 건축은 더욱 복합적인 사회적 환경으로 드러난다.
미엘 래더맨 유켈리스의 참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미술사적 맥락을 더한다. 유켈리스는 1969년 발표한 ‘유지관리 미술 선언’을 통해 일상과 사회를 유지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제기한 작가다. 그의
작업은 가사와 돌봄, 청소와 도시 위생을 둘러싼 노동을 예술의 영역에서 다뤄 왔다. 대표적인 실천인 〈Touch Sanitation Performance〉에서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뉴욕시의 위생 노동자 약 8,500명과 만났다. 이는 이번 전시의 개별 출품작 설명에 앞서,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주제를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국내 참여자들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을 한국의 건축과 도시, 신체의
경험으로 이어간다. 건축가 이병엽과 안무가 차진엽의 협업작 〈평평〉은 전통적인 건축 수선 방식인 콩댐을
바탕으로 한다. 콩댐은 불린 콩을 갈아 기름에 섞어 장판에 바르는 방식으로, 재료를 다루고 표면을 가꾸는 신체의 행위가 중요하다.

건축가 이병엽과 안무가 차진엽의 협업작 〈평평〉 퍼포먼스 모습 / 사진: 문화역서울284 페이스북
이번 작업은 이전 전시에서 약 200명의 참여자가 208시간 동안 콩을 빻고 문지르며 가꾼 콩댐 한지장판을 재구성한다. 연계
프로그램에서는 관객이 직접 콩을 빻고 한지 바닥을 돌보며, 간단한 움직임을 통해 몸과 바닥의 관계를
경험한다. 바닥은 작품을 받치는 배경이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의 시간과 움직임이 축적되는 표면이 된다.

사진가 김태동의 〈현장의 사람들〉 / 사진: 문화역서울284
사진가 김태동의 〈현장의 사람들〉은 건축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만난 관리자와 현장 근로자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조경가 정영선의 선유도공원 아카이브와 중소도시포럼의 〈소멸의 건축〉은 도시와 지역을 다루는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들 작업을 함께 살펴보면 돌봄의 대상은 개별 건물의 내부를 넘어, 도시의 기반시설과 지역의 변화로 넓어진다.
전시장 곳곳에 마련된 ‘공공디자인 도킹 스테이션’은 작품에서 제기된 질문을 정책과 시민의 실천으로 연결한다. 1층
서측 복도에서는 올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수상작을 소개하고, 2층 그릴의 ‘공공디자인 라운지’에서는 관련 자료와 역대 수상작을 통해 공공디자인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연계해 소개되는 사업에는 주민 참여를 통해 생활 안전 문제를 다룬 용산구 한강로동의 생활 안심 디자인, 천안 두정도서관의 ‘내일의 어린이실’, 파주시의 무장애 통합 놀이터 등이 있다. 이 사례들은 공공디자인이
장소의 외관뿐 아니라 이용자의 안전과 접근성,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생활 경험을 다루는 분야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돌봄의 디자인》 전시장면 / 사진: 문화역서울284
《돌봄의
디자인》은 공공공간을 평가하는 기준에 지속의 시간을 더한다. 완공된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인가에 더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해
어떤 노동과 관계가 필요한지 묻는다. 전시가 보여주는 돌봄은 공간의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인 동시에, 그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살피는 태도다. 관람의 시선이
작품에서 전시장으로, 다시 도시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역서울284 건립당시 모습 / 사진: 문화역서울284 홈페이지
문화역서울284
문화역서울284는 옛 서울역사를 복원해 2011년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5년 경성역으로 준공되었으며,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004년 신역사 개통 이후 철도역으로서의 영업을 마친 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원형복원 공사를 거쳐 문화공간으로 전환되었다. 명칭의
‘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 지정번호에서 가져왔다.
전시정보
전시명: 《돌봄의 디자인
Caring by Design》
기간: 2026년 9월 17일(목)–11월 1일(일)
장소: 문화역서울284 1·2층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관람시간: 화–일요일 10:00–18:00 / 매주 수요일 10:00–19:00
입장마감: 관람 종료 30분 전
휴관: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주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총괄 큐레이터: 정다영(CAC)
큐레이터: 김희정, 정성규
문의: 02-3407-3506
웹사이트: 문화역서울284 공식 전시 안내








